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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를 ‘여긴 행복이다.’라고 인정하는 건 ‘오온자체가 행복이요.
행복이 실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사랑자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물론 그런 것도 있지요.
여기서 사랑자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랑자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가 사랑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온자체가 괴로움이요, 이 세계 자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라는 것은 부정적인 말씀이 아니라 복음이다 이런 얘깁니다.
점점 벗어나게 되고 여기서 드디어 ‘이것이 괴로움이다’가 아니라 이 괴로움을 초월해서 말할 수 없는 ‘지복’이 이르게 된다.
그거를 ‘여긴 행복이다.’라고 인정하는 건 ‘오온자체가 행복이요.
아까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는 즐거움인 행복이 오더라도 ‘아이고 행복해 죽겠다.
그래서 ‘오온자체가 괴로움이요, 이 세계 자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라는 것은 부정적인 말씀이 아니라 복음이다 이런 얘깁니다.
달콤한 말이 아까도 얘기해 드렸다시피 내가 하는 바깥세상의 대한 즐거움을 탐욕을 전부다 행복이라고 얘기 하는 거기 때문에 그건 점점 ‘탐에 머물러’ ‘탐에 강요되어 탐에 완전히 동요되어’ ‘인색함’ 까지 간다.
행복이 실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온자체가 괴로움이요, 이 세계 자체가 무상하고, 괴로움이다.’ 라는 것은 부정적인 말씀이 아니라 복음이다 이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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